오늘은 우주 탐사의 역사에 대하여 초기부터 경쟁이 치열했던 중기 그리고 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재미있는 우주 탐사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우주 탐사 초기
우주 탐사의 역사는 고대 천문학자들이 밤하늘의 천체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했던 인류 문명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어서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로켓의 기원은 발명가들과 과학자들이 물체를 공중으로 추진할 수 있는 폭발 장치를 실험하기 시작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입니다. 러시아의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는 우주 비행의 이론적인 기틀을 마련하였고 우주 비행의 아버지로 언급되기 합니다. 미국에서는 로켓을 무기로 개발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제2차 세계 대전 군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우주 탐사를 위한 로켓의 잠재력에 대한 연구는 전쟁 끝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기
우주 경쟁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다양한 결과물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시작합니다. 냉전의 긴장과 기술적 우위를 보여주고자 서로가 동기부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로 우주경쟁의 첫 번째 중대한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세계가 놀랐고, 우주탐사의 새로운 시대 시작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1958년 소련의 업적을 따라잡고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였습니다. 1961년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가 프리덤 7의 준궤도 비행으로 우주에 진입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지만, 만 우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비행이었습니다. 이는 NASA의 약간 부족한 성공이었습니다. 같은 해,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지구 궤도를 도는 최초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경쟁 초기에는 미국이 소련에 조금 뒤처지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은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지구 궤도를 포함하여 6개의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머큐리 프로젝트로 대응하였습니다. 1965년 NASA의 제미니 프로젝트로 우주비행사 에드 화이트의 최초 우주 유영을 달성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폴로 프로젝트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
미국 항공우주국이 1961년부터 1975년까지 실시한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이며 아폴로 1호부터 18호까지 총 16대의 우주선을 사용하였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의 계획은 지구 궤도, 달 착률, 귀환 세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1968년 아폴로 7호를 시작으로 지구 궤도에서 우주선의 시스템과 우주비행사의 상태를 시험하는 유인 임무들이 지구 궤도의 단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 임무는 달 착륙 단계의 시작이었습니다. 인간을 달에 착륙시켜 지구로 데려오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이 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간이 되면서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닐 암스트롱은 훗날 이것은 한 인간에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약진이라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2012년 사망하였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를 통해 총 6번의 유인 달 착륙이 있었으며, 마지막 아폴로 17호는 197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18호부터는 예산문제로 전면 취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폴로 17호가 마지막 탐사선이 아님을 입증하는 미확인 동영상이 어느 웹사이트에 공개되면서 아폴로 18호에 대한 음모론이 있었고 이와 관련된 영화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아폴로 프로젝트는 인류 우주 탐사의 중요한 이정표였고, 달과 지구 너머 미지의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돕는데 이바지하였습니다. 또한 우주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책, 영화 등 다양한 영감을 주면서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